흔적/산~산!

아름다웠던 우중여행 (제주 & 한라산) - 둘째날

소풍가는 달팽이 2007. 9. 8. 09:37

새벽4시 알람이 울린다.

로봇처럼 일어나 창문을 먼저 열어본다.

세차게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다.

전화를 이용해 기상상황을 확인한다.. 여전히 호우경보

제주 일부 지역은 침수되었다는 보도도 있다.

 

통제만 해제되면 비는 어찌되든 상관없는데

새벽에 도둑고양이마냥 들어가보자...

차를 몰아 성판악코스를 향한다.

삼나무 숲길..

맑은 날이었으면 얼마나 이뻤을까.

비와 안개에 쌓인 거리는 그 숲을 볼 새도 없다.

성판악 관리사무소!!

알면서도 모른척 " 못들어가지요?" 라고 묻는다..

예상된 대답이 어떤것이지 알면서도...

"네.. 경보가 내렸습니다."

"단지 한라산만을 위해서 비행기표 끊어 왔는데 어찌해야 되나요..

다른 관광지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요~ "

내 심정을 알아달라고 계속해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래도 방법이 없단다...

그럼 나에게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고 떼를 쓰자

제주 오름 보존회 소속이라는 관리인이 가까운 오름 몇군데를 소개해주며

오름에 올라보라고 한다.

제주 오름은 낮게는 200m고지에서 높게는 1000m고지를 넘는 곳도 있다.

 

나에게는 아픈 기억이 또 있었다.

2003년 1월1일 한라산을 찾았었다.

10여년만에 처음으로 제주에 폭설주의보가 내렸다.

시내에 눈이 쌓이는 경우는 드문 일이라는데

시내에도 무릎높이까지는 눈이 쌓였으니 상당히 이례적인 일일수 밖에.

제주 산악회의 도움으로 성판악을 도전했으나 결국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오름 몇군데를 올랐던 아픈 기억이 말이다.

 

그런데 또 그렇게 하라고....

안하면 또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끝에 바람소리 큰 섶지코지로 향했다.

 

 내 기억에 예쁜 곳으로 자리매김한 그곳으로.

올인의 촬영장으로 유명해진 그곳으로.

입장료는 없었고 주차비만 1800원.

비바람이 장난이 아니였다.

그곳에 도착하자 불운하게도(이건 순전 내느낌이다)

이 빗속에서 수학여행중인 한 여고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홍천여고, 어랏..같은 강원도네.

타국에서 한국사람만난 기분이랄까.

학생 몇명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아 본다.

건너편에 보이는 성산일출봉이 서러워 보인다.

안개에 휘감긴 일출봉!!

 바람에 우비가 날려도 비에 카메라가 젖어도

그냥 그분위기에 심취되어간다.

그냥 좋아........

산에 못간 것만 빼면 모든게 좋아.

그냥 즐기는 거야.

그 비바람에 내 모든것 씻기어 나갔으면 좋겠어.

한참을 그렇게 이곳 저곳을 살피고 내려왔다.

다음 코스를 고민했다.

여전히 나란 인간은 추억에 의존해 사나보다.

 

다음 코스로 떠오른 곳은 산책로가 참 좋았던

" 신영 영화 박물관"

  <영화박물관 입구>

 < 신영영화박물관 전경>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고 있는데 어랏 하늘이 맑아진다.

이 억울한 마음. 지금도 늦지 않았어...

기상상황을 다시 확인해 보지만 여전히 제주 전역이 호우경보속이다.

비가 오락가락 한다.

한라산을 접자...접어야 한다.

입장료 거금 6천원을 내고 입장한다.

영화박물관답게 요모조모 잘 꾸며 놓았다.

 

세트장 모습도, 그 오래된 시나리오들도, 많은 촬영도구들도 있었지만

내눈을 잡는건 하나의 안내판.

제 3영화!!

제3영화니 인디 영화니 하는 것들을 제대로 감상해보고 싶었는데..

그건 없었다.

박물관 내부를 샅샅이 둘러보고 바깥으로 나왔다.

잘 꾸며놓은 정원같은 느낌의 잔디밭.

 

 < 기분좋게 만드는 돌길>

<무엇을 위한기도일까? >

 

설경구랑 함께 사진도 찍고 2.2km나 되는 해안 산책로를 걸었다.

많은 꽃들이 피어있다. 연신 셧타를 누른다.  

 < 계요등>

<무릇>

<으아리>

 

좋다.. 그냥 걷는 이느낌이 좋다.

여전히 비는 오락가락하지만 그렇게 많은 비가 내리지는 않는다.

아마 내가 안스러워서인지 산책로라도 제데로 심취해보라는 의미였나보다.

 

한라산도 못갔는데 제대로 제주 음식이나 먹자쪽으로 결론내고

맛집 정보에서 제주 은갈치요리 하는 곳을 물색한다.

정방폭포부근의 " 원조숲섬갈치"라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목표를 정하고 찾아가니 기분좋게 맞아준다.

제대로 먹으려면 갈치회도 먹어야하고 갈치조림에 구이까지 먹어야한다.

"한라산 못가 억울한 사람이니 음식은 절대로 맛있어야 합니다."라고 엄포를 놓았더니

주인이 빙긋이 웃으며 잘해드릴거란다.

스페셜 모듬갈치라는 메뉴가 그 모든걸 소화해주고 있다.

제법 가격은 비쌌지만 그걸로 선택했다.

<갈치회>

 

자리젓과 갈치젓. 갈치젓은 처음 먹어봤는데, 어~ 그맛 괜찮네.

다먹고 또 나의 떼쓰기작전이 시작되었다.

저녁에 먹을 수 있게 갈치젓 조금만 싸주시면 안될까요?

하하하..주인도 그냥 넘어오고 말았다.

 

배부르고 나니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할일도 없는 탓에 전화로 권해주신 월드컵 경기장에 가서 영화나 한편 보기로 했다.

월드컵 경기장을 언제 가 볼것인가..이 기회에..

한바퀴 둘러보고 영화관을 찾는다.

월드컵 경기장 내부의 아마 먹거리 �들이 자리했었을 곳을 롯데시네마에서 접수했나보다

7관까지 자리잡고 있었고 " 화려한 휴가"를 선택했다

영화 이야기는 따로 쓰기로 하겠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왔더니 하늘이 파랗다.

너무 너무 억울해.. 월드컵 경기장 앞에 보이는 한라산.

 

 

 

한라산은 내게 너무 인색한거 아니야?

아니 한라산은 나를 너무 원하는거 아니야?

자꾸만 내가 보고싶어서 또 오게 하려고?

 

억울한 마음을 접고 숙소로 향하는 길.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내일은 등반을 할 수 있겠구나하는 안도감.

문제는 호우특보 해제이다. 호우특보가 내려진 이상 입산 통제는 풀리지 않을 것이기에.

 

아뿔싸!!

숙소가 가까워지자 또 하늘이 흐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어휴 참.... 인내심이 바닥에 닿는다.

이제 제주도의 마지막 먹거리 흑돼지를 먹으러 간다.

한잔 술에 모든 시름 다 날려버릴 속셈으로 숙소근처의 음식점을 찾는다.

표선의 "선녀가든"

사람들이 북적인다. 잘된 선택인거야..

모름지기 사람이 북적이는 곳이 맛나는 법이거든.

예상대로 음식맛 괜찮네..

아니 음식맛 괜찮네가 아니라 고기맛 괜찮네.

주어진 양을 다 먹지 못하고 일어선다.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는 점점 세차지고 있었다.

그래도 간다.

잠을 못자는 한이 있어도 간다.

밤 12시!!

새벽2시 출정(완전 전쟁에 나가는 기분이었다) 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