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ESSAY/그리움

피천득 《금아연가》

소풍가는 달팽이 2016. 5. 24. 09:45

 

 

# 금아연가 #

- 피천득

 

1.

길가에 수양버들 오늘따라 더 푸르고

강물에 넘친 햇빛 물결 따라 반짝이네

임 뵈러 가옵는 길에 봄빛 더욱 짙어라.

2.

눈썹에 맺힌 이슬 무슨 꿈이 슬프신고

흩어진 머리칼은 한 낮 위에 오리오리

방긋이 열린 입술에 숨소리만 듣노라.

 

3.

높은것 산이 아니 멀은 것도 바다 아니

바다는 건널 것이 산이라면 넘을 것이

못 넘고 못 건너가올 길이오니 어이리.

4.

모시고 못 산다면 이웃에서 사오리다

이웃서도 못 산다면 떠나 멀리 가오리다

두만강 강가이라도 이편 가에 사옵고저.

5.

보는 것만이라도 기쁨이라 하셨나니

지금도 이 땅 위에 같이 살아 있는 것을

어떻다 그 기쁨만도 드려서는 안되는고.

6.

추억에 지친 혼이 노곤히 잠드올 제

멀리서 가만가만 들려오는 발자욱은

꿈길을 숨어서 오는 임의 걸음이었소.

7.

그리워 애달파도 부디 오지 마옵소서

만나서 아픈 가슴 상사보다 더 하오니

나 혼자 기다리면서 남은 일생 보내리다.

 

8.

목청이 갈라지라 엷은 가슴 미어질 듯

제 사랑 제 못 이겨 우는 줄도 아옵건만

아쉬운 마음이라서 행여행여 합니다.

9.

번지고 얼룩지고 마디마디 아픈 글을

입술 깨물고서 말 만들어 보노라니

구태여 흐르는 눈물 편지 다시 적시오

 

10.

날 흐린 바다 위에 갈매기들 우는고야

흩어진 머리칼에 빗질 아니 하시리니

비나니 임의 나라에 날씨 명랑 합소서.

 

11.

때마다 안타까워 불러 보는 그 이름은

파란 하늘 푸른 물결 두사이를 지나가서

애달픈 목소리라도 다시 들려 주어라.

12.

하루를 보내노면 와서 있는 또 하루를

꽃이 져도 잎이 져도 찾아 오는 또 하루를 닥쳐올 하루하루를 어찌하면 좋으리오.

13.

오실리 없는 것을 기다리는 이 마음을

막차에 나리실듯 설레는 이 가슴을

차 가고 정거장에는 장명등이 꺼지오.

14.

예서 마주 앉아 꽃다발을 엮었거니

흩어진 가랑잎을 즈려밟는 황혼이여

여울에 그림자 하나 흘러 흘러 갑니다.

15.

문갑에 놓인 사진 고요히 빛을 잃고

어스름 어슴푸레 이 하루도 저무를 제

나뭇잎 지는 소리를 아픈 가슴 듣노라.

16.

꿈같이 잊었고저 구름 같이 잊었고저 잊으려 잊으려도 잊는 슬픔 더욱 커서

지난 일 하나하나를 눈물 적셔 둡니다.

 

17.

설움을 세월따라 하루 이틀 가오리다

아름다운 기억만이 가슴속에 남으리다

옛얼굴 떠오르거든고이 웃어 주소서

 

18.

훗날 잊혀지면 생각하려 아니하리

이따금 생각나면 잊으려도 아니하리

어디서 다시 만나면 잘 사는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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