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한걸음 또 한걸음

변하는 것이 어디 나 뿐이겠는가- 아침가리,명지가리 지나 구룡덕봉으로

소풍가는 달팽이 2007. 10. 1. 02:37

(07.09.30)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코도 맹맹한데

자상한 님의 배려로 따뜻한 난로의 온기로 시작한 아침.

여유롭게, 호사스럽게 아침식사와 차를 마시고 간단한 짐을 꾸려 야생화 낙원 구룡덕봉을 찾아 나서는 길.

< 분교 앞길에 피어 있는 작은 꽃송이 - 큰 빗자루 국화 >

 

왕복 트레킹 거리 24KM로, 트레킹 예정시간 7시간으로 추정.

<그림의 조경분교- 명지가리- 월둔삼거리- 구룡덕봉 코스 >

 

어제의 과음의 효과는 분명했다. 새벽 아침가리를 보고팠는데 못보고 말았으니

늘하는 변명이지만 이번에 못보면 다음에 보면되지로 마무리된다.

 

덕봉으로 오르는 길은 참 호젓하다.

누구라도 기분 좋은 걸음을 계속 할 수 있을 것이다.

 

 < 끊없이 이어지던 숲길 >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아침가리를 자꾸만 떠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마도 예쁜 모습만을 보고 싶어하는 나의 욕심이리라. 

 < 욕심 많은 자의 뒷모습 >

 

빠른 가을을 기다리는 걸까?

나는 자꾸만 빨간 단풍을 찾는다. 

 < 혼자 유유히 불타 오르는 단풍 >

 

올여름은 비오는 날이 많아 일조량이 부족해 잎들이 많은 영양분을 담을 수 없었던 탓인지

제 빛깔을 내지도 못하고 낙엽이 되고 있었다.

 

단풍은 드는 것이 아니라 단풍이 진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변하려고 변하는 것이 어디있겠는가? 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니까 변해지는 거다.

 

나란히 걷는 그 시간이 나쁘지 않다. 그러나 생각은 다른 듯하다.

함께 가는  사람은 정말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싶다.

그에 비해 나는 자연이 내게 주는 좋은 점만을 생각하고 좋은 것만을 보고싶어한다.

나쁜 것은 피해가려는 나를 보면서 나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라고 생각한다.

 

끝나지 않는 아침가리골의 숲길을 걷는데 굉음 소리가 난다.

오프로드팀이다.

조용히 숲길을 걷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 소리가 소음일 수 밖에 없고 방해가 될 수 밖에 없다.

열심히 발품을 팔고 있는 나에게 오프로드카 라이더들은 사치로 비쳐지고

낭만을 모르는 사람으로 비쳐진다.

 

수량이 많다는 것은 길을 걸으면서도 느낀다.

계곡으로 미쳐 스며들지 못한 물들이 곳곳에 웅덩이를 만들어 내고 있다.

수해로 건널 수 없는 곳도 여러 곳이어서 물이 많을 때는 산길을 걷다가도

물 속을 첨벙대며 걸어야 한다. 

< 다리위에서 본 아침가리 계곡>

 

곳곳에는 아침가리에  과거에 사람이 살았던  민가의 흔적들이 보인다.

다리를 건너기를 8개였나? 세다가 나의 명성높은 건망증으로 까먹었다

 

구룡덕봉에 군막사가 있어서 군의 이동통로로 지금의 임도가 만들어졌다는데

사가리중 두개(명지가리와 아침가리)를 건너야 덕봉에 이를 수 있으니 다리가 많은 것도 당연하다.

참고로 적가리는 방태산 자연휴양림쪽에서 구룡덕봉 오르는 쪽에, 연가리는 두무대쪽에 위치해 있다

 

아침식사 때 그곳의 사람들이 전해준 이야기는

구룡덕봉 가는 길에 탄산약수인 아침가리 약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동행자는 몇번을 올랐지만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대충의 위치 설명만으로 찾기는 쉽지 않은 곳임을 직감하고 길을 나선 터라

최대한 눈을 길가쪽으로 돌리며 걸어간다.

 

아침가리가 끝나고 명지가리로 접어 들었다.

대충 이야기 들은 지점이 가까워온다.

갑자기 느낌이 와서 쳐다보니 아래로 향하는 길이 있다.

쫓아가 보니 " 아침가리 약수" 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 아니다 보니 약수는 방치되어 있었고

그것을 본 동행인이 말끔히 약수터 청소를 한다.

나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 약수샘 옆을 흐르는 명지가리계곡  >

 

약수는 물이 굽이쳐 흐르는 계곡 바위틈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 불게 불든 탄산약수 - 아침가리 약수샘 >

 

횡재를 한 듯한 기분으로 돌아오는 길에 약수를 한모금 마시고 내려가리라며

다시금 오르는 길을 재촉한다.

 

기분 좋은 오솔길은 끝나가고 있었고,

오르막 경사가 심해지니 지리지리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목이 타는 것인지, 전날 마신 술탓인지 자꾸만 물을 찾는다.

드디어 월둔 삼거리.

왼쪽으로 내려가면 월둔으로 오른쪽길을 곧장 오르면 구룡덕봉이다.

7부 능선을 넘어가니 피어난 산국들 덕에 조금은 더 가을을 느낄 수 있다.

 <산국 >

 < 고무 찰흙으로 빚어 놓은 듯한 버섯군 >

 

간간히 들려오는 굉음들에 싫은 내색을 노골적으로 한다.

"예의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구.."

 

머리위로 하늘이 가깝다. 거의 다 온 듯하다.

 

방태산 산행시에 구룡덕봉에서 봤던 통신탑을 찾아본다.

저기일까? 여기일까?

 

매봉령 갈라지는 지점에 오니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보인다.

방태산 자연휴양림에서 주억봉을 돌아 하산하는 사람들이다.

매봉령 하산길을 숙지하지 못하고 올라온 듯 길을 묻는 사람들이 많다.

 

 < 안내자 - 매봉령 이정표 >

 

8월의 구룡덕봉은 야생화로 가득 차 있었는데 지금은 어떨까?

오르는 길가엔 용담들과 구릿대들이 풍성하게 탐스럽게 피어 있었는데,

쑥부쟁이들로 가득차 있을거라는 예상을 깨고 구룡덕봉은 절굿대만 많이 피어 있다.

철지난 동자꽃과 둥근이질풀도 간혹 보이긴 했지만 8월보다는 야생화는 많지 않다.

 

헬기장에 자리를 깔고 앉는다..아니 누워버렸다.

흙길과 물길, 돌길을 4시간 반 남짓 올라 오느라 고생한  발도 쉴겸

한눈에 들어오는 주변 경관을 맘편하게 보자는 의도였다.

맑던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몰려온다.

조침령 대간길이 보이다 말다를 반복한다.

 < 구룡덕봉에서 바라본 조침령 대간길 >

 

은비령고갯길과 개인산, 응복산, 주억봉, 멀리 대청봉까지 보여준다.  

< 구룡덕봉에서 바라본 주억봉 >

< 구룡덕봉에서 본 매봉령 -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

< 구룡덕봉에서 바라본 개인산 >

 

좀 더 좋은 전망을 위해 군막사 지점까지 올랐다.

오프로드팀들이 진을 치고 있다. 미운 사람들..

그런데 그중에 아는 사람이 있다.

오르면서 올라온 그 길을 다시 걸어 내려가려면 참 쉽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왔는데

그런 내가 안쓰러웠던지 그 사람들에게 내려갈 때의 편의를 부탁한다.

 

그토록 싫어라 한 오프로드팀에 편승해서 하산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있을까..

그렇게 맘에 안들어 했는데 그 4륜바이크에 몸을 싣고 내려가면서

편리함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니 말이다.

떨어질까봐 두려워 얼마나 팔에 힘을 주고 잡았던지 아직도 팔이 뻐근히 아프다. 

아침가리 트레킹에 덤으로 오프로드 라이딩까지 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나를 태우고 내려오느라 고생했을 바이크와 그의 자상한 배려에 고마움을 전한다.

 

 < 계곡에서 펼쳐진 사륜 바이크 물쇼 >

 

 < 눈에 띄네 -  국내유일의 사륜 바이크 >

 

나를 태우고 내려오는 라이더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그사람들도 나같은 사람이구나, 단지 즐기는 방법의 차이이구나'를 느꼈다.

나의 편견으로 그 사람들을 함부로 본 것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여행은 강제할 일도 아니고, 어느것을 꼭 보아야 한다고 강요할 일도 아닌것이다.

그냥 그대로 보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또 편견 하나를 깨 부수며 변하고 있었다.

자연의 일부로 겸손히 살아야 함을 다시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