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비가(悲歌)
철쭉이 피고 지던 반야봉 기슭엔
오늘도 옛같이 안개만이 서렸구나
피아골 바람 속에 연하천 가슴 속에
아직도 맺힌 한을 풀 길 없어 헤맸나
아 아 그 옛날 꿈을 안고 희망 안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쓰러져간 푸른 님아
오늘도 반야봉엔 궂은 비만 내린다.
써래봉 달빛 속에 치밭목 산죽 속에
눈을 뜬 채 묻혀져간 잊지 못할 동무들아
시루봉 바라보며 누워 있는 쑥밭재야
잊었느냐 피의 노래, 통곡하던 물소리를
아 아 그 옛날 꿈을 안고 희망 안고
한 마디 말도 없이 쓰러져간 푸른 님아
오늘도 써래봉엔 단풍잎만 휘날린다
오늘도 써래봉엔 단풍잎만 휘날린다
추성동 감도는 칠선의 여울속에
굽이굽이 서린 한이 깊이도 잠겼구나
남부군 문화유격대 대장 <최순희>가 지리산에서 만든 노래이다.
가수 <한보리>가 불렀다.
- 지리산에 뿌려진 삐라 한 장 -
삐라 속의 피아노 치는 여인이 최순희씨다.
그녀는 평양 출신이고 일본에서 음악을 전공했으며,
작사작곡은 물론 노래도 썩 잘 불렀다고 한다.
1950년 전쟁이 나고, 남로당에서 파견한 경남지방의 문화공작 요원으로 남으로 내려왔다가
인민군 후퇴 때 북상 기도중 덕유산 아래 ‘월성리’ 부근에서 경남도당 유격대를 만나
지리산으로 들어와서 남부군 소속 빨치산이 되었다.
당시에 생과 사의 절박한 상황에 처해진 빨치산들에게 문화유격대는,
그들의 유일한 정서적 지원책이었다고 한다.
남부군의 피아골 축제 때는 풍자연극을 연출하고 각색해서 전쟁에 지친 대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이태의 <남부군>에서는 ‘최문희’로 나온다.
"문화지도원 최문희는 동작이 활달하고 격정적인 인상의 20대 여인이었다.
평양에서는 오페라 칼멘의 칼멘역을 맡았던 유명한 오페라가수이며 공훈 배우였다고 한다. 그녀는 등사판으로 50곡집,
20곡집 등을 만들어 대원들에게 배부하고 틈틈이 노래공부를 시키고 있었다.....노래공부도 중요한 과업 중의 하나였다."
- 이태의 기록에서.
52년 1월 하순 국군의 대성골 공세에서 문화대원 15명 중 11명을 잃고,
걷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동상에 걸린 나머지 4명의 여성대원들과 원대성 부근의 산죽 속에 엎디어 있다가 생포되었다.
그 후 그녀는 저렇게 지리산 빨치산의 자수 권유 삐라의 모델로 활용되기도 했다.
저 삐라는 당시에 지리산 골짝에 수 없이 뿌려졌다고 한다.
절대로 자수가 아닌데....
그녀는 지금 저 한 장의 삐라가 멍에가 되어 옛 지리산 동지들과도 연을 끊은 채 여의도에서 살고 있다.
전설처럼 전해져오는 지리산에서 빨치산의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 그녀이다.
매년 음력 9월 9일이면 노고단에서, 치밭목에서,
때로는 이현상이 최후를 맞은 빗점골 절터에서 제사를 지낸다.
피아골대피소 함태식 선생께서는 그의 저서, <그 곳에 가면 따뜻한 사람이 있다>에서
‘최순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셨다.
"남부군 문화공작대 문화부장을 지냈던 최순희라는 여인이 어느날 저자를 찾아 왔다.
밤차를 타고 구례를 통하여 올라 온 그녀는 새벽녁 섬진강이 보이기 시작하자 울면서 오르기 시작해,
노고단에 올라와서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온 산에 대고 절을 했다.
저자는 그녀의 일행을 위해 위령제를 지냈다.
그녀는 노고단 정상에 뜨거운 커피를 뿌렸다.
인텔리 빨치산들이 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죽어가면서도 커피 한잔 마시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혼이라도 있는지, 노고단의 붉은 땅에 뿌려진 커피가 금세 땅 밑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함선생이 들려주신 그녀의 인상은 정말 미인이었다고 하셨다.
지금도 그녀는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피아노를 옆에두고 미인으로 곱게 늙어가고 있다.
몸서리나는 지리산을 생각하면서.
어렵게 연결한 전화통화에서 그녀는 지리산에서 죽어간 수 많은 동지들,
그리고 적군들 모두가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살아 남은자의 회한이 짙게 배인 독백이다.
<지리산 비가// 최순희 노래>
<지리산 비가 // 한보리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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