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08.02.23-24)-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백록이여
2007년 9월 3일부터 5일까지 정말 엄청나게 폭우가 쏟아지던 그 시각에
나는 한라산 등반을 목적으로 제주에 있었다.
호우경보가 발효되어 전혀 등반이 허락되지 않았던 그 시간에 말이다.
바로 그 시점,
산행에 대한 아쉬움으로 '나의 아름다운 여행'은 시작되고야 말았다.
그렇게 여행이 시작되리란 것은 오직 신만이 알고 있었으리라.
2월23일 새벽3시 목포를 향해 출발했다. 물론 마음 가득 사랑을 채우고...
7시 40분경 관광버스가 44명의 인원을 내려 놓은 곳은 목포항 앞의 한 식당.
이미 단체 관광객으로 북적되는 식당안은 항구앞의 식당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 없게 비릿내로 가득하였다.
배멀리 방지를 위해 정말 꾸역꾸역 먹는다는 표현에 걸맞게 밀어 넣는다.
9시 10분 목포발 제주행 씨월드호 승선이다.
510호, 44명이 누워 자면서 가기에는 다소 비좁은 단체실..
일부는 눕고 일부는 앉고 일부는 갑판으로 ...
풍랑주의보가 발효된 바다는 배를 제시간에 제주에 도착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결국 30여분 가까이 연착되어 2시경에 제주항에 도착한다.
기다리고 있던 제주 가이드(뉴월드컵여행사의 강문선씨)의 인솔로 우리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한다.
우비를 쓰고 그 비를 맞으며 찾았던 섶지코지로 다시 왔다.
6개월전 그 때와 다른 점이라면 비가 오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어마어마한 리조트 단지가 조성되고 있다는 것.
나같은 뚱보도 삼켜버릴 것 같은 바람은 은근히 내일의 산행에 겁을 내게 하였다.
그와중에도 봄은 오고 있었다.
물론 봄에 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종이겠지만 유채꽃이 피어 있었다.
잰 걸음으로 일출봉을 건너다 보고, 똑같이 올인세트장을 지나쳐 보면서 내려왔다.
용두암해변에서 소라, 문어, 광어회에 한라산 소주 딱 1잔을 마시고 났더니
기분이 그저 데끼리다.
숙소에서 여장을 풀고 저녁을 대충 먹고(그때서야 대충 먹는다는 의미를 이해함)
행복한 휴식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24일) 새벽 4시에 기상해서 아침식사와 점심 도시락을 챙겨서
성판악에 도착하니 6시 20분이다.
6시 25분에 산행을 시작하다.
다행히 어제의 모두를 삼켜 버릴 것 같았던 바람은 잠들고 없었다.
초입부터 눈이 쌓인 것이 장난이 아니다.
후회 말자고 아이젠을 챙겨 장착을 하고 부지런히 따랐지만
앞서간 사람들의 발걸음이 어찌나 빠르던지 따라 잡히지 않는다.
한시간을 뛰며 잰걸음을 쳐서야 일행과 합류가 되었다.
눈이 어찌나 많이 쌓여있는지
가끔씩 들여다 보이는 바닥은 아마도 1m는 더 아래에 있는 듯하다.
7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하늘은 뿌옇다.
어~이거 아닌데.. 구름이 걷혀라를 연속하여 입으로 뇌이며 걷다 쳐다본 하늘에
한줌 햇살이 새어든다. 아~ 해가 뜨고 있나보다.. 좋은 징조야.
하늘이 파랗다.. 구름이 걷히고 있다... 파란하늘과 상고대의 조화는 환상 그 자체다.
아름다운 여행이 가져다 주는 행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무말 하지 않아도 좋았지만 주고 받는 이야기속에서 넘치는 행복을 느낀다.
8시 30분 진달래밭 대피소~
탄성이 절로 나온다.
우리가 걸어 온 그 길이 구름밑이었다면 진달래밭 대피소에서는 구름위를 걷고 있다.
하얀 구름의 바다와 제주도의 푸른바다,
그리고 구름 한점없는 파아란 하늘 그리고 눈덮힌 구상나무 군락들 ~
너무 이쁘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고 있는 듯한 아름다움~
어느 그림이 이토록 이쁠 수 있을까.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백록담을 올려다본다.
아~ 저기가 고지인가........
6개월의 인고를 딛고 다시 찾은 내게 하늘은 백록담을 선물하실건가~
천운이다....조상님의 은덕이다.
온갖 좋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내게 와 닿는 말은 한가지~
6개월 전엔 마음을 열지 않아서 하늘이 한라산을 선물하지 않았었지만
마음을 열고나니 하늘이 한라산을 선물로 주셨다는 그말~
제발 그 말이 맞기를.....
동능정상이 가까워지자 나무 한그루 없는 그곳이 마치 에베레스트 같다며
사진을 찍어본다.
바람이 만들어낸 눈물결도 예술이다.
바위길도 눈에 묻혀 우리에겐 평탄한 평지길을 만들어준다.
10시 드디어 한라산 동능정상 백록담이다.
바람도 없고 하늘은 높고 햇볕은 따스하다.
백록담은 일년에 채 30일도 그 바닥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하물며 눈덮힌 백록담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백록담 넘어 6개월전 올랐을 어리목 산장을 떠올려본다.
거세게 비바람이 불던 그 즈음에 뜨거운 커피한잔에 몸을 녹이며
눈물을 머금고 하산했던 그 어리목 산장을......
백록담을 배경으로 여러컷을 사진을 찍고
정상에 오른 기념으로 작은 소시지 하나에 한라산 소주를 또 한잔 맛본다.
캬~~~~~아.
바로 이 기분이지~
바람도 없는 그 곳에서 30여분을 지체하며 일행들을 기다린다.
후미까지 모두 도착했다.
다시 관음사 방향으로 출발이다.
암릉으로 하산길이 힘들거라고 예상하였지만 눈으로 덮힌 길은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그저 평지일 뿐이었다.
15분 정도 내려온 안부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까마귀떼의 시끄러운 향연속에서 꼭꼭 눌러 담긴 도시락을 먹으며
행복함에 빠져본다.
따끈한 커피한잔에 여유도 가져보면서
다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해본다.
맺은 인연을 풀고자 다시 찾았지만 오히려 그 인연의 매듭이 더 단단해지는 듯한 마음이다.
어차피 가져가야할 운명이라면 가는데까지 달려가보는거다.
피하지 말고 그냥 가보는거다.
12시 25분 용진각대피소다.
푯말만 있고 대피소는 온데간데 없다.
바로 내가 한라산을 찾았던 2007년 9월의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하여 용진각 대피소는 유실되고 말았다.
안타까워했던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만약 그때 무리해서 관리사무소의 눈을 피해 산행을 강행했었다면 어쩌면 지금 산목숨이 아닐지도 모르는데...
1시 15분 관음사 안내소에 도착이다.
어느 것하나도 마음에 거스리는 것이 없는 아름다운 산행이었다.
날씨도 사람도 마음도...
아름다운 여행이 내게 주는 행복함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따뜻한 마음들이 주는 탁주 한 사발이 참으로 좋다.
산행이 일찍 끝나 배 출항시간까지 시간여유가 있어
모충사를 들렀다. 조선시대 CEO 김만덕할멈의 기념비가 있다.
어느 시대건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자는 분명 있나보다.
버스를 타고 제주항으로 가는 동안 마트에 들러
맑은 소주맛이 느껴지는 한라산 소주를 넉넉히 샀다.
4시 30분, 배는 제주항을 출항하여 다시 목포로 향한다.
돌아오는 길에 모두들 오늘의 좋았던 산행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감동을 전한다.
오고가는 약간의 술잔 속에 한마음임을 담는다.
아름다운 동행이 있는 아름다운 여행은
해상에서의 아름다운 일몰과 함께 저물어 가고 있었다.
내 마음 모두를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동행이 있는
이 아름다운 여행은 그치지 않고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두다리가 불편해져 산행이 어려워진다면 차를 이용한 관람도 좋으리라.
함께 차향을 느끼며, 자연의 몸부림을 그대로 느끼며 온 산하를 누비고 다녀도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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